일본판화에서 영감을 얻다
[아츠앤컬쳐] 피에르 보나르(Pierre Bonnard,1867~1947)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따사로운 빛이 그림 속에 스며들어 온기가 느껴지는 것 같다. 잔잔한 파스텔톤의 색채와 여유로운 일상의 모습이 잘 어우러져 봄날의 나른한 오후를 연상케 한다. 여인의 나체를 담은 그림들도 관능미 보다는 친근함과 포근함이 모성애를 닮았다. 잔잔한 프랑스의 시골의 전망을 그린 풍경화도 화사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을 준다. 어디에 걸어도 화사하고 예쁜 그의 그림들을 일컬어 장식화적인 성격이 강하다고 평한다. 그렇다면 보나르는 미술사의 흐름에서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
피에르 보나르는 인상파도 야수파도 아닌 나비파에 속한다. 나비(Nabi)란 히브리어로 예언자란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1888년 무렵 파리의 사립미술학교인 아카데미 줄리앙(Académie Julien)에서 프랑스 젊은 화가들이 모여 이룬 화파이다. 아카데미 줄리앙은 1867년에 화가인 로돌프 줄리앙이 설립한 곳으로 20세기 초까지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던 곳이다. 더불어, 나비파는 약 10여 년동안 지속되었는데 개성이 각기 다른 젊은 프랑스 화가들로 구성된 협회였다.
그들이 모여서 추구했던 첫 번째 목적은 이젤에 놓고 그리는 작품과 장식화가 지나치게 다른 장르로 구분되는 점을 안타깝게 여기고, 그 경계를 허무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예술과 장식, 오늘날에 비유하자면 순수예술과 상업예술인 디자인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당시 인상파 화풍이 깊이가 부족하고 피상적이며 감각적인데 치우쳐있다는 비판과 고민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한편 나비파의 특징 중 하나는 신앙적인 면, 정신적인 면을 지닌 것인데 이는 상징주의와도 공통된다. 그뿐만 아니라 미학적인 관점에서는 모티브에 테두리를 두르고 경계를 구분짓는 식의 방식을 자주 사용하였는데 이는 에꼴 드 퐁타방(Ecole de Pont-Aven)과 유사성을 지닌다. 참고로 퐁타방은 프랑스의 북서쪽에 위치한 브로타뉴 지방에 속하며, 에꼴 드 퐁타방의 대표적인 화가로는 폴 고갱이 있다.
나비파의 작가들은 캔버스나 종이라는 전통적인 개념의 재료를 벗어나 부채, 타피스리, 모자이크, 가구, 도자기, 포스터, 책 속의 삽화, 극장의 무대미술까지 그들이 표현할 수 있는 예술의 범위를 넓혔다. 그리고 그들은 몽상, 종교, 일상의 순간들을 작품의 주된 소재로 화폭에 담았다. 그 외에도 작품속에 장식적인 성격이 강한 아라베스크 곡선 및 기하학 무늬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리고 파스텔톤을 많이 써서 예술작품의 장식적인 성향을 높였다. 그렇다면 나비파에 속한 화가들은 보나르 외에 또 누가 있을까? 모리스 드니(Maurice Denis)와 에두아르 브이야르(Edouard Vuillard)가 대표적이다. 그 외에도 프랑스 조각가 마욜(Maillol)과 스위스 화가인 발로통(Vallotton)의 작품이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보나르를 가리켜 흔히들 ‘일본풍이 강한 나비작가(Nabi très japonard)’라 부른다. 무엇보다 일본의 판화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을 볼 수 있다. 보나르의 그림에서 세로형 패널에 길죽한 곡선미를 자랑하는 프랑스 여인들은 마치 일본의 병풍이나 족자 속 여인들을 어딘지 모르게 닮아 있다. 물론 보나르 외에도 인상파를 비롯한 당시 프랑스 화가들은 일본의 판화인 유키요에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다.
<정원의 여인들>은 보나르의 대표적인 작품인데 여인들의 옷에 보이는 물방울무늬, 줄무늬, 바둑판무늬 등이 인상적이다. 이처럼 나비파는 기하학적 모티브들을 반복하여 장식적인 효과를 강조하였다. 여인들의 의상뿐만 아니라 배경으로 보이는 풀잎, 꽃, 나무의 무늬도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어서 마치 텍스타일이나 모자이크를 연상케 한다.
한편, 여인과 함께 보이는 고양이와 개는 마치 히로시게의 일본 판화 속 고양이를 닮아있다. 이 네 점의 연작은 1890년과 1891년 사이에 보나르가 그렸는데 당시 프랑스에서 일본문화에 대한 인기와 동경은 대단했었다. 우리의 한류 이전에 일본의 자포니즘이 약 100여 년 전에 서구를 열광케 했었고, 그보다 1세기 전에는 예로부터 내려오던 중국문화에 대한 동경이 대단했음을 역사의 다양한 흔적들로 확인할 수 있다.
첫눈에 보아도 보나르의 그림은 우리의 눈에 친숙하고 편안하게 느껴지는데 아마도 동양적인 성격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평생동안 자화상, 가족들이 식사와 여가를 즐기는 모습, 목욕하는 여인, 파리의 풍경, 남불의 햇살이 담긴 전원 풍경을 즐겨 그렸다. 마치 일상의 이야기를 일기로 기록하듯이 따뜻한 시선으로 생활의 주변을 화폭에 담았다. 그가 남긴 화사한 색채와 빛을 머금은 듯한 아름다운 그림은 현대인들에게 최고의 힐링이 아닐까 ?
아름다운 보나르의 특별전시가 파리의 오르세미술관(2015년 3월 17일~7월 19일)에서 한창이다. 이후 순회전으로 마드리드의 맙프레재단(2015년 9월 10일~2016년 1월 6일)과 샌프란시스코 미술관(2016년 2월 6일~2016년 5월 15일)으로 이어진다.
글 | 이화행
아츠앤컬쳐 파리특파원, 파리 예술경영대 EAC 교수, 소르본느대 미술사 졸업, EAC 예술경영 및 석사 졸업
inesleeart@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