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의 형체를 발견하다

David with the Head of Goliath,1609~1610,Galleria Borghese, Rome
David with the Head of Goliath,1609~1610,Galleria Borghese, Rome

[아츠앤컬쳐] “가장 좋아하는 화가가 누구예요?”
미술사를 전공한 필자가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종종 듣는 질문이다. 어릴 적 엄마가 좋으냐 아빠가 좋으냐는 질문을 듣고 난감했던 것처럼 실상 딱 부러지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엄마라고 답하면 아빠가 생각나고 아빠라고 대답하면 엄마 얼굴이 떠오르는 것처럼 말이다. 수많은 화가 중에서 누구라고 대답하면 다른 화가들이 떠올라 마음에 걸리지 않을까? 그래도 몇 명 추려서 대답한다면 당당하게 ‘카라바조’의 이름을 포함시켜 말하고 싶다.

카라바조 (Caravaggio)
카라바조 (Caravaggio)

카라바조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서양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바로크 초기의 위대한 화가로서 광기 어린 천재성만큼 괴팍한 성격을 지닌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실 그의 본명은 미켈란젤로 메리시(Michelangelo Merisi, 1571년~1610년)로 이탈리아 밀라노 출신의 화가이다. 그러나 다른 이탈리아의 화가들이 그러했듯이 풍습을 따라서 그도 태어난 마을의 이름인 카라바조(Caravaggio)라고 불렸다.

그렇다면 왜 카라바조를 위대한 화가라고 칭할까? 그 이유는 그 이전의 작품들이 성경 속의 상황을 정적으로 이상화하여 묘사된 것에 비해 카라바조는 마치 현재 상황이 전개되는 것처럼 감정을 극적으로 표현하면서 사실적인 미를 담았기 때문이다. 이는 작품을 보는 이로 하여금 마치 상황이 전개되는 현장에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당시로는 혁신적인 기법이었다. 그는 어떻게 그림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폭발적인 감정을 담았을까? 그 해답은 카라바조가 빛과 어둠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전문용어로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라고 한다.

Death of the Virgin. 1601~1606. Louvre, Paris
Death of the Virgin. 1601~1606. Louvre, Paris

경기도미술관의 박우찬 학예팀장의 설명을 빌리면,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는 프랑스어의 clair-obscure로서 영어로는 clear(밝고)~ obscure(어두운)이란 뜻인데, 키아로스쿠로란 그림에서 물체의 입체감을 강조하기 위해 빛과 그림자를 표현하는 기법을 말한다. 그러나 키아로스쿠로는 단순히 물체의 밝고 어두움만을 표현하는 방법이 아니다. 키아로스쿠로를 연구한다는 것은 빛의 다양한 현상들 즉, 빛의 방사(radiation), 흡수(absorption), 반사(reflection), 그림자(shadow), 역광(back light) 등을 연구하는 것을 말한다. 원리는 단순했지만 키아로스쿠로의 결과는 정말 놀라웠다. 키아로스쿠로는 질감(texture)과 촉감(tactility), 부피(volume) 나아가 정신(mind), 심리(psychology) 등의 다양한 효과를 만들어내었다.

한마디로 키아로스쿠로는 17세기 미술의 꿈을 이루게 한 만병통치약이었다. 17~18세기 서양의 박진감 넘치는 사실적인 미술은 전적으로 카라바조가 발명한 키아로스쿠로라 불리는 과학적인 명암법 덕분이었다.

Boy with a Basket of Fruit, 1593~1594.Oil on canvas, 67cm×53cm (26in×21in).Galleria Borghese, Rome
Boy with a Basket of Fruit, 1593~1594.Oil on canvas, 67cm×53cm (26in×21in).Galleria Borghese, Rome

더불어 카라바조는 기존의 이상적인 미에 도전장을 내고 지극히 사실적인 모습을 그려냈다. 이는 그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볼로냐 출신의 화가 안니발레 카라치(Annibale Carracci, 1560년~1609년)의 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인물의 사실적 표현을 위해 카라바조가 거리의 방랑객들을 모델로 캐스팅했다는 설도 전해지고 있다. 한편,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의 골리앗은 바로 카라바조 자신의 자화상이다. 살인과 도피생활로 파란만장한 삶을 보낸 화가의 자책과 죄의식, 자학이 담긴 얼굴이다.

반면, 일부 평론가들은 다윗 또한 젊은 시절의 카라바조의 모습이라고 주장한다. 어쩌면 그는 젊어서 패기어린 청년이었는데 인생을 살면서 일그러진 영웅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다윗과 골리앗의 상반된 얼굴을 보면서 문득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에 나오는 영호의 대사가 떠오른다. “나 다시 돌아갈래!”

카라바조는 과연 눈앞에 다가올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던 것일까?

글 | 이화행
아츠앤컬쳐 파리특파원, 파리 예술경영대 EAC 교수
소르본느대 미술사 졸업, EAC 예술경영 및 석사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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