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영광은 잠시 빌려 입은 옷이다
[아츠앤컬쳐] 나비는 아름다운 날개를 가진 후에 애벌레 시절을 잊어버린다. 올챙이 적 시절을 아는 개구리는 만나기 어렵다. 부드럽고 달콤한 홍시도 한때는 딱딱하고 떫은 파란 감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인간이라고 다르지 않다. 떨리고 설레고 작은 것에도 감사하던 그 첫 마음을 자꾸 잊어버린다. 하찮은 성과에 우쭐거리고 그 자리가 영원한 줄 알고 어깨를 높인다. 최고를 경험하고 나면 그 후에는 나보다 못한 사람을 경멸하고 나보다 잘하는 사람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벤저민 프랭클린은 이렇게 지적했다. “인간의 성품 가운데 가장 뿌리 깊은 것이 교만이다.”
재능을 가진 사람들, 성공을 맛본 사람들은 자만의 덫에 걸리기 쉽다. 그래서 우쭐대기 쉽다. 그런데 신화 속에서 신들은 인간의 교만함에 대해서 가차 없이 벌을 내렸다. 그중에 아라크네 이야기가 있다.
‘거미’를 뜻하는 이름을 가진 아라크네는 리디아에 사는 염색 명인 이드몬의 딸이었는데 베 짜는 솜씨가 뛰어났다. 사람들은 그녀의 솜씨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건 인간의 솜씨가 아니야. 아테나 여신이 내려준 솜씨임이 틀림없어.”
오만해진 아라크네는 그 말에 발끈했다. “아테나 여신이 내려준 솜씨라니? 내가 아테나보다 훨씬 나아.”
심지어 아라크네는 아테나 여신과 한번 솜씨를 겨뤄보고 싶다고 큰소리쳤다. 이 소문을 들은 아테나 여신은 허름한 노파로 변장해 아라크네를 찾아가 타일렀다.
“감히 신과 겨룰 생각을 하다니…. 그런 경솔한 말을 하면 안 돼.”
아라크네는 노파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고 비웃었다. “여신 같은 건 하나도 두렵지 않아요. 자신 있으면 나와서 나랑 한번 겨뤄보자고 해요.”
아테나 여신은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어서 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아테나와 아라크네는 나란히 앉아 베를 짜기 시작했다. 아라크네는 베를 다 짠 후, 그 위에다 신들을 조롱하는 수를 놓았다.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신하며 여자들을 쫓아다니는 제우스의 모습을 수놓았다. 그뿐만 아니라 바다의 신 포세이돈, 태양의 신 아폴론, 술의 신 디오니소스가 여자를 겁탈하거나 비행을 저지르는 내용을 수놓았다.
아라크네의 작품은 훌륭했다. 그러나 그 속에는 불손함과 교만함이 그대로 들어 있었다. 그녀의 오만불손한 마음을 아테나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아테나는 들고 있던 북을 내리쳐서 아라크네의 베 폭을 찢어버렸다. 그리고 그녀의 이마에 손을 대고 그녀를 응시했다. 오만방자함에 대한 뜨거운 질책이었다.
그때야 자신이 얼마나 교만했는지 깨달은 아라크네는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 그러나 아테나 여신은 아라크네의 죽음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죽지 말고 살아서 이 교훈을 영원히 기억해라. 너도 네 자손도 잊지 말아라.”
그 후 아라크네는 그만 거미로 변하고 말았다. 거미가 된 아라크네가 슬픈 얼굴로 우리에게 전해준다. 재능이 있다고 해서, 성공했다고 해서, 영광을 얻었다고 해서, 높은 자리에 앉아있다고 해서 우쭐거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누구나 아라크네처럼 한순간 작은 성공에 도취한 적이 있을 것이다. 누구나 그때의 오만한 마음을 떠올리면 부끄러움에 얼굴이 뜨거워질 것이다. 한때의 성공, 한때의 영광, 한때의 지위…. 우리가 잠시 빌려 입은 옷일 뿐이다. 한때의 실패, 한때의 시련, 한때의 추락…. 역시 우리가 잠깐 빌려 입은 옷일 뿐이다. 우리는 그렇게 실존이라는 옷걸이 위에 옷을 입는다. 그런데 옷의 특징은 언제든 벗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아니, 언젠가는 벗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옷이 마치 자신의 본질인 것처럼 교만한 것은 아닐까? 잠시 입고 있는, 빌린 옷 때문에 좌절하는 것은 아닐까? 지금의 성공은 완벽한 성공이 아니다. 지금의 실패도 다 실패한 것이 아니다. 정상에 올라가면 언젠가는 내려와야 한다. 그러니 정상에 있다고 야호야호, 환호성을 터뜨릴 것도 없고, 산 아래에 있다고 어깨를 내릴 이유도 없다.
글 | 송정림 방송작가·소설가
<참 좋은 당신을 만났습니다 1,2>, <내 인생의 화양연화>, <신화처럼 울고 신화처럼 사랑하라>, <사랑하는 이의 부탁>, <감동의 습관>, <명작에게 길을 묻다>, <영화처럼 사랑을 요리하다>, <성장비타민>, <마음풍경> 등의 책을 썼고 <미쓰 아줌마>, <녹색마차>, <약속>, <너와 나의 노래>, <성장느낌 18세> 등의 드라마와 <출발 FM과 함께>, <세상의 모든 음악> 등의 방송을 집필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