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은 신의 특별한 선물이다
[아츠앤컬쳐] 책장마다 그의 얼굴이다. 그의 목소리가 거리에 퍼진다. 만나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뜨거워지고 그 사람이 던진 한마디 때문에 차가워진다. 시도 때도 없이 마음에 구름이 일고, 수시로 마음에 비 내리고, 예고도 없이 마음에 폭풍이 인다. 그 사람과 함께라면 절대 정상체온이 될 수 없는 상태… 사랑이다. 커튼 사이로 이른 햇살에 가장 먼저 찾아보는 얼굴, 꿈속에서도 베갯잇에 젖던 얼굴, 자꾸 가려운 심장의 알레르기, 내 마음의 작은 폭풍… 사랑이다.
신화 속에는 천재적인 음악가가 나온다. 오르페우스다. 오르페우스는 오직 단 한 사람만을 사랑했다. 그의 사랑은 우리에게 전해준다. 사랑은 황홀한 마음의 폭풍이라고.
오르페우스는 태양의 신이면서 음악의 신이기도 한 아폴론의 아들이다. 그의 어머니도 천상의 목소리로 노래하는 뮤즈 칼리오페이다. 아폴론과 칼리오페 사이에 태어난 오르페우스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음악을 연주하는 음악가였다. ‘어둠’을 뜻하는 오르페우스, 그 이름 때문일까. 오르페우스가 리라를 연주하면 모든 이가 슬픔에 잠겨 들었다. 아버지 아폴론에게서 받은 리라를 오르페우스가 연주하면 사람과 신들만이 아니라 산천초목과 동물들도 다 감동하고 슬퍼했다.
천재적인 음악가인 오르페우스는 아름다운 에우리디케와 사랑에 빠졌다. 그들은 결혼하고 그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았다. 그런데 그 행복은 잠시뿐이었다. 에우리디케가 숲을 거닐고 있을 때, 그녀를 겁탈하려고 달려드는 양치기가 두려워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급하게 도망치다가 그만 풀 속에 있던 뱀을 밟고 말았다. 그 뱀에게 발을 물린 에우리디케는 결국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오르페우스는 깊은 슬픔에 빠져 아내가 있는 곳을 찾아 나섰다. 아내를 만날 수만 있다면 그곳이 죽음의 세계라고 해도 가고 싶었다. 지하세계로 가려면 우선 배를 타고 강을 건너야 했다. 뱃사공은 오르페우스의 구슬픈 리라 소리를 듣고 감동 받아 스틱스 강을 건너게 해주었다.
이번에는 괴물이 지하 세계로 가는 문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괴물의 가슴에도 음악은 파고들었다. 두 번째 관문도 통과할 수 있었다. 어둠의 지하세계를 끝없이 걸어가면서도 오르페우스는 계속 리라를 연주했다. 오르페우스의 구슬픈 음악을 듣고 지하세계의 왕 하데스와 여왕인 페르세포네의 마음에도 슬픔이 고여 들었다. 지하세계는 통곡의 바다로 변해버렸다. 그곳에 있던 망령들까지도 눈물을 흘렸다. 그의 슬픈 음악에 감동받은 페르세포네가 입을 열었다.
“에우리디케를 지상으로 데려가거라.”
그러나 하데스가 조건을 붙였다.
“지상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절대 뒤를 돌아봐서는 안 돼.”
오르페우스는 절대 뒤돌아보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에우리디케를 구해 지하세계를 떠났다. 오르페우스가 앞장서서 걸었다. 그 뒤를 에우리디케가 따라갔다. 오르페우스는 쉬지 않고 리라를 연주했다. 그리고 에우리디케는 사랑하는 이의 음악 소리를 등불 삼아 앞으로 걸어갔다. 그들은 그렇게 어둡고 험한 길을 걸어갔다. 오르페우스는 한시라도 빨리 그리운 아내의 얼굴을 보고 싶었지만 돌아볼 수 없었다.
드디어 저 멀리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다 왔다고 생각된 순간, 사랑하는 아내의 얼굴을 보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그때였다. 에우리디케가 비명을 지르는가 싶더니 지하세계로 끝없이 빨려 들어가버렸다.
“사랑하는 이여, 이제는 정말 안녕….”
오르페우스가 가슴을 쥐어뜯으며 후회해도 소용없었다. 다시 지하세계로 내려가게 해줄 것을 탄원했지만 더 이상은 사공도 그의 부탁을 거절했다. 오르페우스는 강가에 앉아서 오랫동안 구슬픈 노래만을 불렀다. 그 후 오르페우스는 여자를 멀리하며 에우리디케와의 추억을 간직하고 살았다.
오르페우스는 오직 에우리디케만을 그리워하며 여성들에게 차갑게 대했다. 여자들은 상처받고 눈물 흘렸다. 굴욕감을 느끼고 한을 품은 여자들이 늘어갔다. 그런 어느 날,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만난 여자들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여자들의 한은 무서웠고 오르페우스의 육신은 가랑잎처럼 흩어져버렸다. 오르페우스가 늘 연주하던 리라는 제우스 신이 별자리 사이에 가져다 놓았다.
지하세계로 간 오르페우스는 어떻게 되었을까? 오르페우스는 그곳에서 그리운 에우리디케를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약속했다. 이제는 헤어지지 말자고….
삶의 세계와 죽음의 세계, 그 어디에 있는가가 중요하지 않았다. 함께 있는 것이 소중할 뿐. 그들은 행복하게 들판을 거닐었다. 때로는 그가 앞서기도 하고 때로는 그녀가 앞서기도 하면서…. 오르페우스는 이제 그녀 얼굴을 맘껏 바라보아도 벌을 받을 걱정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의 얼굴을 보고 또 보고,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삶의 세계를 넘어서 죽음의 세계에서도 함께 하고픈 사랑, 그런 대상이 있다는 것은 생의 축복이다.
그 어떤 슬픔과 고통이 있어도 그 사람이 있으니 견딜 만하고, 그 어떤 어둠 속에 있어도 등불을 켜주는 사람 있으니 걱정할 것 없고, 그 사람의 존재가 내 인생의 커다란 버팀목이 되어준다는 일은 참 멋진 일이다. 그와 함께 있을 때는 나 이상의 내가 되는 기분, 그를 위해서 이전의 나보다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어지는 마음…. 함께 있을 때는 모든 부정적인 것들이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은 대단한 행복이다. 그런데 그 사람에 대한 그런 느낌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말 못하는 그리움과 기다림의 세월을 지나, 함께 겪은 고통과 슬픔의 계단을 지나 비로소 다가오는 생의 축복이다.
글 | 송정림 방송작가·소설가
<참 좋은 당신을 만났습니다 1,2>, <내 인생의 화양연화>, <신화처럼 울고 신화처럼 사랑하라>, <사랑하는 이의 부탁>, <감동의 습관>, <명작에게 길을 묻다>, <영화처럼 사랑을 요리하다>, <성장비타민>, <마음풍경> 등의 책을 썼고 <미쓰 아줌마>, <녹색마차>, <약속>, <너와 나의 노래>, <성장느낌 18세> 등의 드라마와 <출발 FM과 함께>, <세상의 모든 음악> 등의 방송을 집필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