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미, 아찔한 외출4, 장지에 채색, 37×86cm, 2013
신선미, 아찔한 외출4, 장지에 채색, 37×86cm, 2013

 

[아츠앤컬쳐] 최근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미를 재해석한 그림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특히 한복을 현대적인 일상과 자연스럽게 접목하려는 시도가 눈길을 끈다. 이러한 시도는 작품의 다양성과 풍부한 감성 계발이란 측면에서도 매우 바람직하고, 의미 있는 시도로써 큰 환영을 받고 있다. 그럼 한복을 단순히 전통적인 관념을 떠나 편안한 일상의 도구나 소재로써 활용한 그림은 언제부터 유행이 시작됐을까? 아마도 2005년경 신선미(1980~)작가로부터 첫 선을 보였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그 이전에도 한복을 입었거나 한복 자체가 그림의 소재로 등장을 했었지만, 평상복처럼 일상의 편안함 속에 주인공이 한복을 입은 케이스, 특히 중장년이 아닌 젊은 여인이 주인공인 경우는 신선미 작가가 처음이었다. 당시 홍익대대학원 시절이었음에도 큰 두각을 나타냈다. 당시 국내 최초의 군집개인전 아트페어를 시작한 마니프의 아트서울 아트페어에 초대되었다. 그녀의 부스 개인전은 말 그대로 인기 만발이었다. 전시가 시작된 지 불과 만 하루 만에 솔드 아웃이 될 정도였다.

신선미, 문양이야기6, 장지에 채색, 80×80cm, 2014
신선미, 문양이야기6, 장지에 채색, 80×80cm, 2014

등장한 초기부터 큰 관심과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 있겠지만, 무엇보다 ‘친숙함의 재발견’이 주요했다. 적어도 그 이전엔 한복은 그저 고리타분하게만 느껴졌던 대상이었다. 주로 어른들이나 특정 연례행사에 입는 ‘박제된 상징적인 옷’에 불과했다. 그림에 나타나도 작품 속 주인공의 준엄하고 격조 넘치는 신분적 성격을 드러내주는 역할을 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신선미 작가의 한복 그림은 처음부터 달랐다. 그
냥 평상복 용도였다. 소소한 모든 일상에서 트레이닝복이나 실내복을 차려 입듯, 그저 스스럼없이 입고 노는 옷이었다.

작품의 묘미는 친숙함을 새롭게 보게 하는 의외성에 있다. 너무나 당연하다고만 여겨졌던 지극히 평범한 요소들을 아주 최소한의 개입으로 전혀 다른 시각이나 관점을 보여준다는 것이야말로 예술가가 지닌 재능이다. 신선미 작가의 그림이 바로 그런 접점이다. 여기에 탄탄한 기본기가 뒷받침 해주니 금상첨화였다. 그녀는 보기 드물게 한국화의 전통 채색기법을 충실하고 완전하게 따르고 있는 젊은 작가이다. 주로 전통채색에 수간채색을 가미해 특유의 담백함을 보여준다. 이 기법은 적지 않은 인내력을 요할 정도로 난해함을 지녔다.

신선미, Secret1, 장지에 채색, 138×68cm, 2008
신선미, Secret1, 장지에 채색, 138×68cm, 2008

사실 웬만한 작가라면 보다 쉽고 간편하게 그려서 효과를 볼 수 있다면 그 길을 택할 것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전해지는 많은 화법들이 제대로 이어지지 못하는 점도 있을 것이다. 단지 일부 관계자들에 의해 전승되거나 보존되는 것이 고작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신선미 작가처럼 우리의 고유한 전통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려는 젊은 층의 노력은 매우 값진 경우이다. 또한 삶이 점차 풍요로워지면서 무뎌졌던 정체성 찾기, 역사 바로 알기 등의 움직임이 많아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점차 전통미를 재해석한 작품들의 인기가 많아지고 있다.

신선미 작품의 빼놓을 수 없는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독특한 이야기구조’이다. 일명 ‘옴니버스 형식의 액자소설’을 보는 듯하다. 한 점의 작품으로도 볼거리가 충분하지만, 개개의 작품들을 이어서도 이야기가 연결된다. 그러다보니 그녀의 작품들은 ‘보는 재미’와 ‘읽는 재미’를 동시에 충족시켜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구성은 첫 개인전이 열렸던 2006년부터 ‘그림 속 그림이야기’이라는 전시제목으로 선보였다. 어린 고양이와 소인국에서 나올 듯 작은 ‘개미요정’들의 유쾌한 신경전이 이야기 구성의 중심이다.

신선미, 그들만의 사정2, 장지에 채색, 99.5×78cm, 2011
신선미, 그들만의 사정2, 장지에 채색, 99.5×78cm, 2011

흔히 고양이와 강아지는 영혼을 본다는 얘기가 있다. 그래서일까 각 작품에 여주인공과 함께 등장하는 고양이는 주변을 돌아다니는 요정들에 정신이 팔렸다. 주인은 그것도 모르고 애꿎은 고양이만 쫓으며 난리를 핀다. 2009년경부터는 아이까지 합세했다. 어른의 눈에는 천사나 요정의 모습이 보이지 않지만, 순수한 어린 아이는 볼 수 있다는 설정이다. 사람들의 ‘맑은 영혼에 대한 이야기’도 그림에서 한 몫 하게 된다. 아주 갓난아이 때부터 등장해 지금은 제법 큰 아이로 성장한 모습이 고스란히 작품에 등장한다.

말 그대로 작가이기 이전에 평범한 주부이며 엄마로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녹여낸 결과이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에는 우리 삶에 대한 따뜻한 메시지가 그대로 담겨 있다. 평소 생활신조이자 좌우명으로 삼는 ‘언행일치(言行一致)’라는 말과도 연결되는 듯하다. 겉으론 더없이 내성적인 모습과는 달리 그림 속에서만큼은 밉지 않은 개구쟁이 기질이 다분하다. 정갈하고 웃음기 가득한 그녀만의 자유로운 상상의 세계, 특별한 감각으로 되살린 한국 전통채색화의 묘미 등. 신선미 작가의 ‘그림 속 그림이야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형이다.

작가 | 신선미(1980~)는 울산대와 홍익대 일반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주로 한복을 입은 여자 주인공 주변에서 일어나는 가벼운 일상들을 전통 채색화 기법으로 표현해오고 있다. 화면에 등장하는 모습들은 편안하면서도 친숙하지만, 제작기법은 더없이 치밀하고 높은 완성도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2007년 소설가 황석영의 신작 장편소설 『바리데기』의 표지 그림은 아직도 회자된다. 그동안 2006년 ‘그림 속 그림이야기’라는 전시제목의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6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또한 ‘개미요정’을 메인 테마로 삼아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소개하고 있다. 주요 작품 소장처로는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하나은행, 시몬느, 서울특별시 보라매병원, 연미술 등이 있다.

글 ㅣ 김윤섭 명지대 대학원 미술사 박사수료. 현재 미술평론가로서 국립현대미술관 및 서울시립미술관 작품가격 평가위원, (사)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이사 및 전문위원, 대한적십자사 문화나눔프로젝트 아트디렉터,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겸임교수 및 서울시 공공미술 심의위원,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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