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도성욱의 작품은 사진으로 착각할 만큼 손맛이기가 막힌 그림이다. 물론 순수 회화 작품이다. 그의 그림은 ‘실재와 허구가 혼재하는 풍경’으로 평가 받는다. 찬란하게 쏟아지는 빛 아래 은은하게 드러나는 숲속의 나무들은 보는 이를 사로잡을
만큼 생동감이 넘친다. 마치 엷은 햇살을 등진 촉촉한 빛줄기로 샤워를 마친 기분이다. 모노톤의 짙푸른 소나무 색채와 역광의 하모니가 빚어낸 이른 아침 깊은 숲속의 정경. 그곳엔 길이 있다.
빛의 길이다. 시원의 끝에서 시작된 그 길은 우리를 초대하는 시간의 터널이다. 이미 오래전 수많은 사람이 지났거나, 아니면 첫 발을 내디딜 처녀지여도 상관없다. 도성욱의 길은 마음으로 걷는 명상의 산책로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명상의 숲속에서 촉촉한 생명의 빛으로 그만의 시를 쓴다.
작품의 제작과정에 대한 한 인터뷰에서 도 작가는 “즉흥적이죠. 마음 가는 색으로 아무렇게 색을 칠하다보면 붓이 움직이는 동안 어떤 상황을 연출할까 하는 계획이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연속적으로 손끝을 통해 실행해가는 방식으로 작업해 나가죠. 저지르고 뒤에 수습하는 그런 방식이랍니다. 나무기둥이 모자란다 싶으면 더 그리고 제가 임의로 만들고 싶은 데로 처음부터 계획 구상 같은 건 없어요. 빛의 표현은 맨 마지막에 하고….”
이처럼 도성욱은 전혀 인위적인 연출에 의존하지 않고, 내면의 느낌에 충실한 ‘무기교의 기교’를 화면에 보여준다. 무위자연에 대한 단상을 그림으로 옮긴 셈이다. 도성욱의 회화는 얼핏 겉보기엔 전형적인 구상화법을 구사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꿈속에서 본 환영을 실존하는 풍경으로 재정립시켜온 그동안의 작품들은 ‘구상과 비구상의 경계를 넘나든 독창적인 화면’이다.
하지만 좀 더 들여다보면 실존에 가까운 허상이 아니라, 허상처럼 느껴지는 환상적인 실존의 풍경을 묘사한 것이다. 미세한 붓 터치를 수도 없이 겹쳐 좀 더 포근하고 안온한 숲의 정경을 선사하고 있다. 더욱이 화면 위에 구사된 빛의 섬세한 조율은 보는 이에게 더없이 풍성한 시각적 충족감을 더해주기에 충분하다.
도성욱 작가의 빛에 대한 해석은 몇 가지 패턴이 있다. 우선 초기 작품들은 빛이 숲속의 녹색기운에 한 번 걸러져 간접조명처럼 부드럽고 은은함을 자아내는가 하면, 최근에 올수록 아예 (빛의 출처나 시발점을 직접 확인시켜주기라도 하듯) 빛의 정체가 더욱 명확하게 출현한 작품도 있다.
이전엔 빛의 조도로만 존재감이 부각되고, 도저히 하루 중 어느 시간 때인지 정확히는 모를 정도로 모호한 표현이 앞섰다. 명도보다 촉감이 더 강조된 빛이었다고 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작년부터 표현된 빛은 일출이 얼마 지나지 않은 아침나절이나, 하루를 마감해가는 석양 무렵처럼, 시간대가 좀 더 명확해진 작품이 눈길을 끈다.
도성욱의 숲 그림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익숙한 풍경이다. 오늘 아침에 다녀온 조용한 산책로거나 한참 전에 거닐던 기억 저편의 고향 같은 느낌이다. 익숙함과 친근함, 그것은 도성욱 숲의 첫 번째 매력이다. 마치 촉촉한 생명의 기운이 가득 들어찬 것 같은 숲속의 정경은 대기의 기운을 촉감으로 느낄 정도로 생생하다. 하지만 그가 사실적인 표현기법으로 연출해낸 것은 모두 실재하지 않는 자연풍경이다. 친근하고도 낯선 상상속의 풍경이다. 그의 숲은 눈에 보이지 않는 빛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장치에 가깝다. 도성욱의 숲 그림은 온몸에 산재한 감성의 촉수로 빛의 촉감을 느낄 때 비로소 제대로 살아난다.
도성욱의 숲은 볼 수는 있어도 갈 수는 없다. 비록 숲의 골격을 옮겨 놓았어도 외형이 아니라 본질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굳이 구분하자면 ‘실경화(實景畵)’보다 ‘진경화(眞景畵)’에 가깝다. 밝음과 어둠의 대비로 전개된 숲의 전경은 언뜻 모노톤의 추상화를 연상시키기까지 한다. 그러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강한 흡입력을 경험시켜 준다. 자연의 근본적인 힘, 눈에 보이지 않는 빛의 감정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또한, 도성욱의 빛은 산란하는 눈부심보다 피부로 느끼는 촉감과 코끝을 자극하는 향기에 가깝다. 그의 침엽수 소나무 숲은 날카롭기보다 오히려 포근하고 푹신하다. 쉼 없이 상큼한 내음이 뿜어져 나온다. 소나무향은 이해력과 자비심을 불러오며, 솔잎은 예리한 지혜를 모아준다고 했듯, 도성욱 역시 숲으로 많은 이야기를 건넨다.
초록의 계절에서 시간이 멈춘 듯 상상의 숲이 펼쳐지는 도성욱의 빛 그림. 그 숲은 영혼과 육체의 위안을 주고, 더없이 평온한 휴식을 제공한다. 그중에서도 녹푸른 숲이야말로 시원한 해방감의 절정을 이룬다. 세상은 빛으로 인해 형상의 존재를 인식한다. 그 형상들은 빛의 밝음과 어두움을 만나 서로 간의 조화를 통해 우리의 인식을 깨운다. 도성욱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형상 그 이전의 근본에 대한 물음의 답을 빛에서 찾고 있다는 점이다. 도성욱의 빛은 삶을 향한 진한 경의감이다.
작가 ㅣ 도성욱
도성욱(1971~)은 대구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으며, 그동안 국내외에서 14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빛과 어둠이 조화를 이룬 추상적인 모노톤 숲 시리즈로 이름난 그의 작품은 국내 미술시장에서 가장 선호 받는 대표적인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MBC 금강미술대전 대상(2004), 제13회 고금미술작가선정(2001), 목우회공모전 특선(1999), 한국수채화공모전 특선(1995) 등을 수상한 바 있다. 현재 전업작가로 활동 중인 도성욱의 주요 작품 소장처로는 (주)교원, ART BANK, 경기도미술관, 금복문화재단, 네팔 한국영사관, 대구은행, 대전 MBC, 대전검찰청, 대전지방법원 서산지원, 삼성 거제호텔, 삼성문화재단, 일신문화재단, 청주검찰청, 크라운해태제과, 포스코, 한솔오크밸리 등 다수가 있다.
글 ㅣ 김윤섭 명지대 대학원 미술사 박사수료. 미술평론가,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겸임교수 및 서울시 공공미술 심의위원,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