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마저 작가의 그림은 아주 독특한 첫인상을 지니고 있다. 얼핏 보면 일반적인 민화풍(民畵風)의 소재들이 등장하는 그림들이다. 특히 화조(花鳥)가 대부분이어서 더욱 친숙하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어딘가 모르게 낯선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꽃에 비유하자면, 생화(生花)보다는 조화(造花)에 가깝다. 이에 대해 작가는 “그림을 플라스틱처럼 그리거나, 자연스러움을 인위적 혹은 인공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결국 마저 작가는 ‘현대풍 플라스틱 민화’를 보여주려는 것인가?
플라스틱 화조화로 그린 현대민화마저 작가의 최근 작품의 주요 테마는 ‘플라스틱 화조화’이다. 그녀는 평소 인문학 강의를 즐겨 듣거나, 관련 책들을 탐독한다. 2005년 개인전 ‘윤두서 변주화전’의 그림들을 담은 책 『변주화론(變奏畵論)』은 작가가 얼마나 작품에 대한 고민을 깊게 하는가를 잘 보여준다. 이 책은 변주곡(變奏曲)에서 빌려온 미술의 새로운 표현양식으로 ‘변주화’라는 개념을 새로이 제시한 내용으로, 윤두서와 현대인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합성해 윤두서+ 100인의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최근에 선보이는 ‘플라스틱 화조화’ 시리즈 역시 일상 삶의 소중함을 깨닫는 동시에, 세상의 이면을 발견하자는 명료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보통 눈앞에서 빛나는 행복에만 집착하지만, 그 행복 이면의 숨은 욕망에 눈길을 돌리게 된다면 전혀 색다른 정경이 펼쳐진다. 그런 면에서 여성의 삶은 무척 다채로운 숙명을 지녔다. 한 여인으로서 태어나지만, 누군가의 아내가 되고, 생소한 공간에서의 며느리이며, 곧 엄마라는 엄청난 책무를 감당해야 한다. 대개 이 과정에서 ‘여인 본연의 진정한 자아’는 소멸되기 십상이다. 겉으로만 화려한 플라스틱의 모습이 곧 여인의 삶에 빗댈 수 있겠다. 마저 작가의 시선도 그것을 주목한다.
마저의 ‘플라스틱 화조화’ 시리즈는 진정성을 상실한 ‘이미테이션 삶’을 가장 직설적으로 그리고 있다. 처음엔 아이가 가지고 노는 플라스틱 장난감을 무심코 바라보다 떠오른 아이디어라고 한다. 이어 2차원도 3차원도 아닌 ‘납작해진 공간구성’이 특징인 민화(民畵)에서 그것과의 유사성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다가 지금은 신사임당의 초충도(草蟲圖)를 응용한 ‘조충도(鳥蟲圖) 시리즈’까지 발전시키고, 가상세계의 존재감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컴퓨터 3D 미디어 영상작품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또한 마저 작가의 그림은 유화(油畵)지만, 한국화 화법을 응용해 ‘겹겹이 쌓는 중첩 채색기법’으로 완성한 것이다. 그래서 유화의 진득한 무게감과 수채기법의 투명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모란이나 나비 등 갖가지 민화적 형상을 제대로 구현해내기 위해 직접 민화를 사사 받기도 했다. 그래서 마저 작가의 현대민화는 단순히 외면의 조형성은 물론 내면의 정신성까지 차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림자도 없는 전통민화의 평면성을 3차원의 공간적 입체화로 재해석한 마저의 현대민화는 무궁한 스토리텔링의 보고이다. 그녀 그림에서 모란꽃은 다양한 삶을 구가(謳歌)하는 여성의 상징이기도 하다. 모란도 중심의 ‘공간의 이완’ 연작은 여인이 가질 수 있는 여러 욕망이 작가로서 삶의 원동력이자, 큰 장애물이었던 자신의 현실적 체험담이 투영된 작품인 셈이다.
이외에도 그림마다 무수한 이야기가 함축되어 있다. 마치 새와 곤충들은 선문답을 나누듯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포착된다. 어떤 곤충은 실제로 날개를 잃고 아파보이기도 하고, 흑백의 쥐는 오색실을 물고 줄다리기를 하는가 하면, 허공에 노랑공기가 꽉 들어차 따뜻함을 전해주기도 한다. 이런 마저의 그림은 진짜와 가짜의 진정한 의미, 그리고 그 경계에 대한 해답을 쫓는 화두(話頭)를 설명하고 있다.
오방색 실로 이어진 삶의 윤회
마저의 최근 작품인 조충도(鳥蟲圖) 시리즈를 보면 하단에 그림자가 보인다. 빛으로 인한 어두운 그림자가 아니라, 물이나 거울에 투영된 것이다. 어떤 것은 위의 형상을 그대로 비추고 있지만, 간혹 어느 것은 변형된 모습을 보인다. 이런 그림자는 매우 깊은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다. 서로 다른 자아와 영혼의 혼재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작가의 개인적 무의식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는 이 ‘물그림자’는 과거에 대한 잠재의식의 기호이기도 하다.
성경에서 그림자는 ‘원형 실체를 가르쳐 주는 상징’이라고도 하고, 불교에선 ‘업(業 또는 業報)’과 ‘윤회(輪廻)’의 단초로도 본다. 그림자가 몸을 떠나지 않듯, 업(業)은 우리 자신의 행동에서 비롯되기 마련이다. 결국 업이란 ‘선하거나 악한 정신적 작용 혹은 그 의지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겠다. 그래서 마저 작가는 민화라는 형식을 빌려 우리의 현실과 무의식을 동시에 관조하고 있다고 하겠다.
여기에 한 발 더 나아가 ‘오색실’을 등장시켜 시각적으로도 좀 더 구체화 시키고 있다. 특히 6폭 모란도 병풍 형식의 작품에선 다양한 색조의 새들이 부리에 오방색실을 물고 있거나, 다리에 감고 등장한다. 이는 긍정과 부정이 공존하는 현실, 자유와 속박을 함께 취할 수밖에 없는 현실로 보인다. 이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욕망의 끈’이기도 하다. 바로 부처는 ‘만족을 모르는 욕망’이 윤회의 원인이라고 하며, 그 욕망이 없어질 때 윤회는 끝난다고 했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현생에서 욕망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래서 우리 삶 자체가 욕망의 연속이며, 스스로를 옭아매는 덫일 수도 있는가 보다. 그것은 고스란히 우리의 업이 되어 되돌아온다. 이런 무지(無知)가 낳은 ‘욕망의 덫’이 바로 마저의 오색실인 셈이다. 오색실은 불가(佛家)에선 ‘하늘에서 오색찬란한 기운이 내리듯 부처님의 법력(法力)이 우리 중생(衆生)에게 전해져서 모든 고통(苦痛)에서 해탈(解脫)됨’을 상징한다. 때문에 마저 작가는 그 욕망의 덫이 우리 스스로를 구원해줄 해법이라고도 말한다. 또한 스스로 내 안에서 답을 구하라는 자가정진(自家精進)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작가소개 ㅣ 마저
마저(majeo)는 동국대 서양화과와 홍익대 동양화과 학사 및 석사를 졸업했다. 그동안 3회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2013 아트서울전(한가람미술관), 2013 세계적십자 150주년 기념 ‘생명사랑 희망사랑’ 희망타일 벽화 참여, 2013 TEAF’13 태화강국제설치미술제 영상초대작가, 2009 여백전(시옹예술관), 2008 여백전주(전북예술회관)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단행본으로는 <사랑초의 상념>(2003, 상아기획)과 <변주화론>(2005, 상아기획) 등이 있다.
글 ㅣ 김윤섭
명지대 대학원 미술사 박사수료. 현재 미술평론가로서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겸임교수 및 울산대 미술대학 객원교수,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