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은 사랑과 함께 먹으면 더 맛있다

 

[아츠앤컬쳐] 과연 나 혼자서 살아가는 일, 단 하루라도 가능할까? 우리는 모두 다른사람들의 친절한 어깨에 기대어 살고 있다. 세상은 도저히 혼자서는 살 수 없는 곳이다. 내가 먹은 쌀을 생산해준 농부도 은인이고, 나를 직장까지 데려다 줄 버스 기사도 은인이고,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음악의 작곡가도 은인이다. 그러므로 지금 만나는 타인은 모두, 내 삶의 은인이다.

그러나 타인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혼자만 잘났다는 사람들도 참 많다. ‘나르시시즘’이라는 용어는 신화 속 나르키소스의 이야기에서 유래했는데, ‘스스로를 사랑하는 자기애’를 뜻한다. 자신의 외모나 능력에 도취되어 거기서 헤어나지 못하는 나르시시즘 환자들은 뜻밖에 아주 많다.

나르키소스(프랑스식 이름으로는 ‘나르시스’)는, 강의 신과 강의 요정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이름은 ‘망연자실’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데, 이름 그대로 나르키소스를 쳐다본 사람들은 모두 그 자리에서 멍하니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그의 아름다움은 그렇게 그를 보는 사람들의 넋을 빼놓을 정도였다. 테베의 예언자인 테이레시아스는 그의 운명을 이렇게 들려주었다.

“저 아이는 자기 모습을 보면 안 된다. 그래야 오래 살 것이다.”

나르키소스의 어머니는 아들의 불행을 걱정해 나르키소스가 자기 얼굴을 보지 못하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아들에게 절대 거울을 주지 말라고 했고, 혹시 나르키소스가 연못에 나갈 때면 수면을 흔들어 물에 비친 제 모습을 보지 못하게 했다. 하인들과 요정들의 도움으로 나르키소스는 자라는 동안 단 한 번도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나르키소스의 빼어난 미모에 많은 처녀들과 요정들이 사랑을 고백하곤 했다. 하지만 나르키소스는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다. 나르키소스는 수많은 여성과 요정들에게 모욕감과 사랑의 상처를 주었다. 나르키소스에게 거절당한 샘의 요정이 신들에게 기도를 올렸다.

“나르키소스도 누군가를 사랑하게 해주세요. 그 사랑이 이룰 수 없는 가슴 아픈 사랑이 되게 해주세요. 나르키소스도 사랑의 아픔을 알게 해주세요.”

요정의 기도가 얼마나 한에 맺혔던지 복수의 여신인 네메시스의 마음을 움직였다. 람누스의 산속에는 아주 맑은 샘이 있었다. 어느 날 사냥을 하던 나르키소스는 목이 말라 그 샘가로 갔다. 예전 같았으면 나르키소스가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하도록 샘의 요정들이 물결을 거칠게 일었을 것이다. 그러나 네메시스가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손을 써두었다.

샘물은 잔잔했다. 나르키소스는 물을 마시려고 몸을 구부렸다. 그때 수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아름다웠다. 나르키소스는 그만 그 아름다운 모습에 넋을 잃고 말았다.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 모습이 자기 자신의 모습인 줄은 까맣게 몰랐다. 물속에 있는 얼굴이 숲 속의 요정일 거라고 생각한 나르키소스는 물속의 그를 사랑했다.

나르키소스는 입술을 수면 가까이 가져갔다. 그리고는 그 아름다운 이를 안으려고 두 팔을 물속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나르키소스는 상심에 빠졌다. 그러나 또 어느새 다시 수면에 나타났다. 나르키소스는 그 샘가를 떠날 수가 없었다. 수면에 비친 그 모습은 그가 잡으려들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며 그의 애간장을 태웠다.

자신을 사랑했던 수많은 이들처럼 나르키소스도 사랑에 빠졌다. 사랑의 열병에 홀로 여위어갔다. 결국, 나르키소스는 아무도 없는 샘가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고통으로 인해 죽고 말았다.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그가 죽고 난 자리에 한 송이 꽃이 피어났다. 자줏빛 심장과 하얀 몸을 가진 꽃, 수선화였다. 나르키소스가 수선화로 변했다고 해서 수선화는 ‘나르키소스’라고 불린다. 꽃말도 ‘자기애’이다.

자신을 지나치게 사랑하는 일은 신화 속에서 죽음에 이르는 금지된 사랑이 되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은 괜찮다. 나 자신을 사랑해야 남도 사랑할 수 있는 거니까. 그러나 자신만을 사랑하는 이기적인 사랑은 곤란하다. 나르시시즘은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고 자신 외에 다른 것들은 전혀 사랑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신화 속의 나르키소스처럼…

나르키소스는 샘에 비친 자신의 모습만 사랑했지 그 밖의 것은 전혀 사랑하지 않았다. 샘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 말고도 주변에는 아름다운 것들이 넘쳐 났다. 꽃과 나무, 하늘, 구름, 바람… 그러나 다른 것들에게는 눈을 돌리지 않았다. 마음을 주지 못했다. 오직 자신의 모습에만 시선을 주었다.

그는 다른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토록 애타게 갈망한 에코의 사랑도, 그 누구의 찢어지는 가슴도 돌아보지 않았다.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오직 자기 자신만을 바라보고 자기 자신만을 사랑한 극단적인 자기애는 슬픈 결말을 낳고 말았다.

희망보다 절망 쪽에 서 있을 때, 인생의 추위에 어깨가 움츠러들 때 그리운 것은 타인의 온기가 아닐까? 혼자서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은 없다.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건 ‘물질’만이 아니라 그 물질을 ‘함께 누릴 사람들’이다. 지금 이 순간 자기애의 벽을 높이 쌓아둔 건 아닌지. 그 벽 앞에서 애타게 문을 두드리는 마음이 있다. 가만히 들어보라. 그리고 돌아보라. 그 마음이 들릴 것이다. 보일 것이다.

글 | 송정림 방송작가·소설가
<녹색마차>, <약속>, <너와 나의 노래>, <성장느낌 18세> 등의 드라마와 <출발 FM과 함께>, <세상의모 든 음악>, <심혜진의 시네타운> 등의 FM, 「명작에게 길을 묻다 1, 2」, 「영화처럼 사랑을 요리하다」, 「성장비타민」, 「마음풍경」 , 「뭉클」, 「감동의 습관」, 「신화처럼 울고 신화처럼 사랑하라」, 「사랑하는 이의 부탁」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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