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연애 시절에는 사계절 모두, 꽃이 핀다. 그것도 은은한 꽃이 아니라 붉은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연애 시절 마음에 내리는 비는 촉촉한 가랑비가 아니라 한번 왔다 하면 억수같이 쏟아 붓는 폭우가 내린다. 눈이 내렸다 하면 폭설이다. 그래서일까? 연애 시절은 잔잔하게 추억되는 것이 아니다. 증기기관차처럼 시시각각 다가와서 마음을 화끈거리게 하며 감정을 뜨겁게 한다. 희망에 찼다가 절망에 찼다가, 기쁨에 들떴다가 슬픔에 잠겼다가…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며 연애하는 여인이 신화 속에도 있다.
그 여인의 사랑은 엄연히 따지면 사랑이 아니다. 집착이다. 그래서 더 가련하고 그래서 더 안타까운 여인의 이름은 칼립소다. 아틀라스의 딸로 태어난 칼립소, 그녀의 이름은 그리스어로 ‘감추는 여자’라는 뜻이다. 칼립소는 아무도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섬에 살았다. 그 섬에 어느 날 한 남자가 찾아들었다. 트로이 전쟁의 영웅인 오디세우스였다.
트로이 전쟁이 끝난 뒤 배를 타고 귀향길에 올랐던 오디세우스는 포세이돈의 분노 때문에 강풍을 만나 표류하다가 홀로 이 섬에 떠밀려왔다. 지친 얼굴에 남루한 옷차림을 하고 들어섰지만 칼립소는 한눈에 그가 영웅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파도가 밀려오고 밀려가는 외로운 섬에 찾아든 오디세우스는 그녀에게 주어진 선물과 같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주어진 슬픈 운명이었다.
칼립소는 오디세우스를 깊이 사랑하게 되었고, 오디세우스와의 사이에 아이도 낳았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오디세우스는 영혼이 텅 빈 사람처럼 행동했다. 오디세우스의 마음에는 오직 고향에 두고 온 아내 페넬로페에 대한 그리움뿐이었다. 칼립소는 오디세우스의 마음을 짐작하고 불안해졌다. 어떡하든 그를 붙잡고 싶었다.
“당신 아내는 잊어버리세요. 제 곁에 영원히 있어주세요.” 그러나 텅 빈 오디세우스의 눈빛이 칼립소의 마음을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저는 당신을 위해 뭐든 해드릴 수 있어요. 제가 당신을 불사신으로 만들어드릴게요. 여기서 저와 함께 영원히 살아요. 저에겐 당신밖에 없어요.”
칼립소는 오디세우스에게 신들의 음료와 음식을 내주었다. 오디세우스는 식탁에 놓인 신들의 음식인 암브로시아와 신들의 음료인 넥타르를 보았다. 그것을 먹고 마시면 그도 불사신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영원히 산다고 한들 고향에 두고 온 아내 페넬로페를 만날 수 없다면 다 헛된 것이었다.
오디세우스는 신들의 음식을 먹지 않았다. 그들의 음료도 마시지 않았다. 신이 되어 영원히 살고 싶은 생각도, 그 섬에서 오래 지낼 생각도 없었다. 오로지 고향에 돌아가 그리운 아내를 품에 안고 싶었다. 그런 오디세우스를 바라보는 칼립소의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칼립소는 오디세우스를 7년이나 붙잡아두었다. 그를 위해서는 뭐든 못할 게 없었다. 그를 극진히 사랑했고 섬겼다. 그러나 오디세우스의 마음은 먼 수평선 너머에 있었다. 오디세우스는 아침에 일어나면 바다에 나가 멍하니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수평선 너머 고향을 그리워하고 그곳에 있는 아내 페넬로페를 그리워했다. 그의 마음을 잘 알면서도 칼립소는 그를 보내줄 수 없었다. 그녀는 그렇게 그의 사랑에 목말라했고 자신의 사랑에 집착했다.
신들은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는 오디세우스의 처지를 가엾어했다. 어느 날 제우스 신의 심부름으로 헤르메스가 칼립소를 찾아왔다. 그리고 신들의 뜻을 전했다. “오디세우스를 그렇게 붙잡고 있으면 안 된다. 그를 고향으로 보내주어라.”
칼립소는 찢어지는 가슴을 붙잡고 울고 또 울었다. 절대 못 보낸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신들의 뜻을 거역할 수 없었다. 아니, 사랑하는 이를 붙잡고 있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이미 깨닫고 있었다.
칼립소는 고통스러운 가슴을 부여안고 오디세우스에게 뗏목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뗏목을 이루는 나무들이 하나하나 묶이고 뗏목이 만들어질 때마다 칼립소의 마음은 타들어 갔다. “뗏목이 다 만들어지면 그는 떠나겠지.” 뗏목이 완성되는 것을 보는 일은 그녀에게 지옥과 같은 고통이었다. 결국, 뗏목이 다 완성되었다.
오디세우스는 뗏목에 올라탔다. 그는 아무 주저 없이 바다를 향해 나아갔다. 그토록 그리던 페넬로페의 품으로, 아들이 있는 고향으로 그는 돌아갔다. 외로운 섬에 칼립소는 또 그렇게 홀로 남겨졌다. 슬펐다. 그러나 칼립소는 그제야 미소 지을 수 있었다.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지만 입가에는 기쁨이 고였다. 사랑하는 이가 이제는 행복할 테니까.
칼립소에게 사랑은 화사한 꽃밭이 아니었다.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외로운 사막이었다. 그녀의 사랑, 그 무게만큼이나 고통의 무게도 무거웠고, 그녀의 사랑, 그 크기만큼이나 그녀의 슬픔도 컸다. 그러나 나중에야 깨달았다. 붙잡는 것만이 사랑이 아니라 보내주는 것도 사랑임을… 나의 행복만 붙잡는 게 사랑이 아니라 그의 기쁨을 헤아리는 것이 사랑임을…
우주의 모든 별들에게도 사랑하는 방법이 숨어있다고 한다. 달이 지구를 사랑하지만 부딪혀오지 않고 지구가 태양을 사랑한다고 해서 녹아들지 않는다. 사랑의 원리는 지구 순환의 원리와도 같다. 사랑은 내 욕심 때문에 가까이 다가감으로 해서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다. 서로를 지켜주며 간격을 유지하는 것이다.
글 | 송정림 방송작가·소설가
<녹색마차>, <약속>, <너와 나의 노래>, <성장느낌 18세> 등의 드라마와 <출발 FM과 함께>, <세상의모 든 음악>, <심혜진의 시네타운> 등의 FM, 「명작에게 길을 묻다 1, 2」, 「영화처럼 사랑을 요리하다」, 「성장비타민」, 「마음풍경」 , 「뭉클」, 「감동의 습관」, 「신화처럼 울고 신화처럼 사랑하라」, 「사랑하는 이의 부탁」 등의 책을 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