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살아가는 힘이다

 

[아츠앤컬쳐] 아름다운 나비는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다. 바로 애벌레의 시간이다.힘들고 고된 애벌레의 시간들이 없이 나비는 절대 날아오를 수 없다. 나비는 애벌레의 시간을 아름답게 추억한다. 애벌레였을 때에는 나비를 그토록 꿈꾸지만 나비에게는 애벌레 시절의 그 힘든 과정들이 다 아름다운 여정으로 기억된다.

사실 가보면 별거 아닌데 기다리는 설렘이 있어서 좋은 것. 소풍도 그렇고, 여행도 그렇다. 희망도 그렇다. 뭔가를 이루기 위해 준비하고, 땀 흘리고, 기도하는 마음. 꿈을 다 이루면 이렇게 하겠다, 저렇게 하겠다… 작정도 많고 계획도 많은 마음. 그때가 바로, 꿈을 꾸는 시기이다. 그러고 보면 인생의 하이라이트는, 희망을 품고 사는, 바로 그 시간이 아닐까? 아직 이루지 못했기에 설렘과 기다림이 있는 애벌레의 그 시간이 가장 황홀한 인생의 클라이맥스는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판도라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판도라가 전해주는 신화의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다. 희망. 아무리 힘들고 거친 세상이지만 그래도 희망이 있으면 살아갈 수 있다는 그 사실을 판도라는 우리에게 알려준다. 제우스는 대장간의 신 헤파이스토스를 불러 명령을 내렸다.

“여신의 모습을 닮은 인간 여성을 만들도록 하라.”

헤파이스토스는 진흙을 이겨 여신의 모습을 닮은 인류 최초의 여성을 만들었다. 명장 헤파이스토스답게 그 여인은 아름다웠다. 제우스의 명령을 받은 신들은 그녀에게 자신이 가진 가장 고귀한 것을 선물했다.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달콤한 교태와 애잔한 그리움, 남자의 속을 태우는 욕망을 주었다. 지혜의 여신 아테나는 베 짜는 기술을 주고 머리에는 눈부신 면사포를 드리워주었다. 상업, 외교의 신인 헤르메스는 화려한 말솜씨와 마음을 숨기는 법을 주었다. 음악의 신인 아폴론은 고운 노래로 사람의 애간장을 녹이는 재주를 주었다. 다른 신들도 그녀에게 많은 선물을 안겨주었다. 그래서 그리스어로 ‘모든(pan) 선물, 재주(dora)’라는 뜻을 가진 판도라(Pandora), ‘모든 선물을 다 받은 여자’라는 뜻의 판도라가 탄생했다.

아름답고 매력적인 판도라의 모습에 만족한 제우스는 그녀에게 다가가 상자를 내밀며 말했다.

“이것은 신들의 왕인 내가 내리는 선물이다. 하지만 절대 이 상자를 열어보면 안 된다.”

판도라는 그 상자를 조심스럽게 받아 들었다. 제우스는 아름다운 여인 판도라를 프로메테우스의 아우인 에피메테우스에게 보냈다. 에피메테우스는 판도라의 미모에 반해 그녀를 아내로 맞았다.

판도라는 에피메테우스와 한동안 행복한 날들을 지냈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판도라는 제우스가 준 상자를 열어보고 싶은 호기심에 견딜 수 없었다. 절대 열어봐선 안 된다는 제우스의 경고가 떠올랐지만 금기는 더 깨고 싶어지는 법이다.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판도라는 제우스가 준 상자를 열고 말았다.

그때였다. 상자 속에 들어있던 슬픔, 미움, 고통, 시기, 질투, 공포, 의심, 증오, 질병, 가난, 전쟁 등 온갖 나쁜 것들이 모두 튀어나와 세상 밖으로 흩어졌다. 깜짝 놀란 판도라가 황급히 뚜껑을 닫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뒤늦게 후회해도 소용없었다. 하지만 상자 속에는 딱 하나 남아있는 것이 있었다. 판도라가 급히 상자를 닫는 바람에 빠져나가지 못한 것은 바로 희망이었다.

그 후 인간은 그전에는 겪지 않아도 되었던 수많은 어려움과 고통을 겪으며 살아야 했다. 그러나 희망만은 간직하게 되었다. 그 희망을 버리지 않는 한, 판도라가 상자 속에서 내보내고 말았던 수많은 어둠을 다 이길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판도라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다.

판도라를 위한 변명인지는 모르겠지만, 판도라 덕분에 우리가 얻은 것들이 있다. 그늘 속에서 고뇌하는 철학을 얻었다. 판도라 덕분에 우리는 절망 속에 피어나는 희망, 그 가치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불행의 어둠 속에서 행복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

일에 실패해서, 사랑을 잃어서, 병에 걸려서… 마음이 힘든 이유는 많다. 힘들지 않은 사람은 없다. 판도라의 상자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적용된다. 고통, 슬픔, 질병, 가난은 누구에게나 다가오게 되어있다. 그런데 우리는 한 가지 희망이 사라질 때 모든 희망을 함께 버리는 건 아닐까?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도 주인공이 이렇게 말한다.

“신은 한쪽 창문을 닫으시면 다른 쪽 창문을 열어두신단다.”

한쪽 창문이 닫힌다고 해서 인생의 모든 창문을 닫아버릴 필요는 없다. 조금 실패했다고 모두를 포기해버릴 필요도 없다. 지금의 실패는 스쳐 가는 아주 작은 바람이라고, 그 바람이 지나가면 햇살의 구간이 꼭 찾아올 거라고, 신화 속의 판도라가 전해준다. 아주 많이 미안한 얼굴로…

글 | 송정림 방송작가·소설가
<녹색마차>, <약속>, <너와 나의 노래>, <성장느낌 18세> 등의 드라마와 <출발 FM과 함께>, <세상의모 든 음악>, <심혜진의 시네타운> 등의 FM, 「명작에게 길을 묻다 1, 2」, 「영화처럼 사랑을 요리하다」, 「성장비타민」, 「마음풍경」 , 「뭉클」, 「감동의 습관」, 「신화처럼 울고 신화처럼 사랑하라」, 「사랑하는 이의 부탁」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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