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the kitchen to the table

 

[아츠앤컬쳐] 가정주부라 쉽게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친구는 유럽출장 가는 나를 많
이 부러워했다. 살림하고 아이 키우면서 해외 여행은커녕 국내 여행도 쉽지 않다는 친구가 안쓰러워 “뭘 사다 줄까?”하고 물었더니 르크루제라고 답했다. 친구는 냄비가 무거우니 사서 들고오는 건 무리일 거라며 그냥 해본 소리라고 했다. 그때 르크루제 냄비에 대해 잘 몰랐던 나는 프랑스 브랜드니까 파리에 가면 쉽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사올게”라고 자신 있게 답했다.

빡빡한 촬영 일정 속에서 쇼핑 시간을 내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살림쟁이 친구의 부탁만은 꼭 들어주고 싶어 현지 가이드에게 르크루제 냄비 중간 사이즈로 2개만 사다 달라고 부탁했다. 현지 가이드도 흔쾌히 알았다고 답했다. 그런데 우리 둘 다 그렇게 쉽게 답하는 게 아니었다. 다음날 가이드는 내게 르크루제 냄비를 꼭 사가지고 가셔야 하느냐고 물었다. 다른 냄비는 안되냐고 물었다. “가격이 너무 비싸요?”라고 물으니 가이드는 예상 외의 답을 했다.

“너무 무거워요. 무슨 냄비가 그렇게 무거워요? 그걸 들고 가시게요? 2개나? 트렁크 무게 초과 되실 텐데…”

나는 꼭 사가야 한다고 말했다. 가이드는 냄비가 너무 무겁다고 다른 브랜드를 권했지만 나는 친구가 르크루제를 갖고 싶어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결국, 출장 마지막 날 주어진 짧은 자유시간에 가이드와 함께 르크루제 매장엘 직접 갔다.

스테인리스 냄비만 보다가 알록달록한 르크루제 냄비를 본 순간 나도 모르게 탄성이 흘러나왔다. 이렇게 예쁠 수가… 이건 주방용품이 아니라 팬시용품 매장 같았다. 친구가 갖고 싶어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색상이 아름다워 친구 것만 아니라 내가 쓸 냄비도 몇 개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렌지 컬러 냄비가 너무나 예뻐서 한 손으로 들어 올리려는 순간 꿈적도 않는 냄비 무게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어머나! 왜 이렇게 무거워?”

결국, 두 손으로 냄비를 번쩍 들어 올렸는데 예쁜 디자인과 색상에 감탄은 끊이질 않았지만 만만치 않은 무게 때문에 망설여졌다. 내 것은 고사하고 친구한테 사다주마하고 큰소리쳤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가이드는 한국에 가서 사시는 게 낫겠다고 조언했다. 친구에 대한 우정과 수하물 무게라는 현실 사이에서 한참을 고민했다. 결국, 나는 현실을 택했다. 서울 가서 하나 사서 선물해줘야겠다고 생각하고 르크루제를 포기하고 돌아왔다. 하지만 사지 않기로 결정한 후에도 한참 동안 르크루제 매장을 떠나지 못했다. 세상에 태어나 이렇게 예쁜 냄비는 처음 봤으니까.

서울로 돌아와 친구에게 너무 무거워서 사오지 못했다고 미안하다고 말하니 친구는 꺄르르 웃으며 당연히 사오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단다. 무겁지만 않았다면 예뻐서 색상별로 다 사오고 싶었다고 말하니 친구의 답이 의외였다. 르크루제는 색상도 예쁘지만 르크루제 냄비에다 요리하면 음식이 정말 맛있다고 말했다. 냄비가 무거워 친구도 가끔은 가벼운 냄비를 사용할 때도 있지만 결국은 음식의 깊은 맛이 달라 무거운데도 불구하고 르크루제를 포기하지 못한다고 했다.

“르크루제의 가장 큰 핵심이 그 무게인데 그걸 빼면 핵심이 없어지는 거겠지? 그치?”

친구 덕분에 르크루제를 알게 된 나는 요리를 자주 하지 못하면서도 갤러리아 명품관에 가면 르크루제 매장을 기웃거렸다. 특히 새로운 신상 컬러가 들어 온 날엔 마치 패션 부띡 매장에서 신상 옷이 나온 것 마냥 재밌어하고 즐거워했다.

내 홈쇼핑 방송을 프로듀싱하는 정 PD는 르크루제 냄비를 색색별로 20개 가까이 모았다고 한다. 르크루제 냄비에다 돼지고기 수육을 한 날은 엄마도 어느 유명한 음식점에서 사온 수육이냐며 감탄해 마지않는다고 한다. 자신은 르크루제 없이는 요리를 생각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주변의 르크루제 마니아 여성들 덕분에 결국 나도 노란색 르크루제 냄비를 구입하고 말았다. 색상별로 다 사고 싶었으나 다음에 구입할 색상으로 남겨 놓기로 했다. 르크루제(Le Crueset)는 프랑스어로 고온에 녹인 무쇠를 담는 도가니라는 뜻이다. 1925년 무쇠주물 전문가와 에나멜 전문가가 만나서 설립한 프랑스 명품 주방 브랜드로 ‘from the kitchen to the table’이란 모토처럼 조리 후 테이블에 바로 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색감과 디자인을 자랑한다.

수육 하나를 요리해도 맛있다는 지인의 말처럼 열전도율과 열 보유력이 뛰어나 최소한의 수분을 이용한 저수분 요리를 할 수 있어 영양소 파괴를 줄이고 맛과 향을 살린 요리를 가능케 한다. 깊이 있는 음식맛 때문에 무거워도 사용할 수밖에 없는 <르크루제>이지만 어쨌든 첫 선택은 음식 맛도 무게도 아닌 아름다운 색감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유난희
명품 전문 쇼호스트, 저서 <명품 골라주는 여자> <아름다운 독종이 프로로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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