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때아닌 스트라이프 물결이다. 예년과 다르게 스트라이프 옷이 눈에 좀 많이 띈다 싶었는데 한창 외모에 관심 많은 고등학생 아들도 그랬나 보다. 몇 장의 배우들 화보 사진을 보여주며 묻는다.

“엄마, 이 셔츠는 어디 거야?”

사진을 보니 프랑스 브랜드 세인트 제임스(Saint James)다. 스트라이프 티셔츠 하면 제일 먼저 세인트 제임스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화보 속의 모델들도 하나같이 세인트 제임스를 입고 있다. 올해 스트라이프 패턴이 유행인 걸까? 아님 의식하고 관심 있게 봤기 때문일까? 잡지 화보뿐만 아니라 거리에서도 심심찮게 스트라이프 티셔츠를 입은 젊은이들이 많이 보인다.

하지만 아무리 유행이라고 해도 자칫하면 뚱뚱해 보이고 어깨가 넓어 보일 수 있는 가로 스트라이프 티셔츠는 선뜻 용기 내어 입을 수 있는 옷은 아니건만 유행은 몸매의 결점조차 예뻐 보이게 하는 만화경을 눈에 씌워 주는 것 같다. 너나 할 것 없이 입고 다니는 스트라이프 티셔츠가 그 어느 해보다 더 예뻐 보여 오랫동안 입지 않고 옷장 안에 넣어 두었던 나의 세인트 제임스 나발(Saint James Naval) 티셔츠를 다시 꺼냈다.

내가 세인트 제임스를 알게 된 건 우리나라에 아직 정식 수입 매장이 없던 2000년도 즈음이다. LG홈쇼핑(현재 GS홈쇼핑)에서 수입브랜드 상품 방송을 진행할 때였다. 병행 수입 업체가 방송에서 판매하기 위해 가지고 온 세인트 제임스 티셔츠를 처음 봤을 때 비싼 가격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스트라이프 티셔츠는 아이들이나 젊은 친구들이 입는 저렴한 옷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세인트 제임스는 티셔츠가 티셔츠 가격이 아니었다. 아무리 프랑스산 면 100%라고 해도 사람들이 과연 한 장에 몇만 원이나 하는 줄무늬 면 티셔츠를 살까?

싼 가격의 스트라이프 티셔츠가 주변에 많이 있는데 굳이 고가의 티셔츠를 살 이유가 없을 거라고 판단했다. 며칠 동안 상품 공부를 하며 고민하다 내가 셀링 포인트(selling point : 판매를 일으키는 중요한 소구점)로 잡은 것은 ‘프랑스산 세인트 제임스 면 티셔츠’가 아닌 ‘천재 입체파 화가 피카소’였다. 의외의 셀링 포인트에 담당 PD와 MD 모두 의아해했지만 나는 세인트 제임스가 아닌 파블로 피카소를 팔기로 했다.

스페인 출신이지만 주로 프랑스에서 미술 활동을 한 입체파 화가이자 조각가 피카소는 프랑스 브랜드 세인트 제임스를 무척 좋아했다. 심지어 스트라이프 티셔츠를 입지 않으면 그림을 그리지 않을 정도였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는 대단한 스트라이프 티셔츠 애호가였다.

나는 생방송 내내 피카소 이야기를 했다. 감각 있는 천재 예술가가 선택한 세인트 제임스! 입체파 화가 피카소의 선택을 받은 스트라이프 티셔츠! 세인트 제임스 면 티셔츠는 화가며 조각가인 피카소가 예술 작업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해준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옷이다.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심플하고 깔끔한 스트라이프 무늬는 천재 화가 피카소만큼 감각 넘치는 진짜 멋쟁이들만이 선택할 수 있는 세련된 패턴이다!

그날 방송 결과는 아주 좋았다. 사람들은 면 100% 스트라이프 티셔츠로 인해 자신의 몸이 뚱뚱해 보일 수도 있다는 걱정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피카소가 즐겨 입은 바로 그 세인트 제임스 옷을 공유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예술 감각이 남다른 자신을 재발견하며 즐겁게 쇼핑을 했을 거다.

그날 방송을 마친 후 운 좋게 남아있던 가장 작은 사이즈의 세인트 제임스 나발을 구입했다. 그런데 처음 입어본 세인트 제임스는 나에게 어색했다. 넉넉한 소매통과 몸에 착 감기지 않는 박시한 핏의 면 티셔츠는 남의 옷을 빌려 입은 것 같았다. 보트 네크라인은 살짝 답답한 느낌이 들었고 약간 뻣뻣한 느낌의 면 재질은 부드럽게 착착 감기는 면 소재에 익숙해 있던 나에게 자꾸 거울을 쳐다보게 했다.

세인트 제임스 나발(Saint James Naval)을 입어 본 후 어색한 착용감에 얼굴이 화끈거려 시청자들이 나를 얼마나 욕할까 하는 생각에 잠이 오지 않을 정도였다. 착용감에 대해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피카소를 상상하며 함께 기대했을 착착 감기는 착용감은 온데간데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한 번 입고 두 번 입고 자꾸자꾸 입으면서 내 몸을 기억하는 인공지능 티셔츠처럼 옷이 점점 편해지기 시작했다. 여러 번의 세탁에도 후들거림 없이 여전히 탄력 있는 면 재질에도 믿음이 갔다.

‘아! 이 느낌으로 세인트 제임스를 입는 거구나.’
첫 느낌은 살짝 거칠게 다가오지만 점점 무한한 매력을 발산하는 세인트 제임스 스트라이프! 특히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가을이 되면 그리 얇지 않은 세인트 제임스 나발이 아주 제격이다. 화이트 면바지에 입어주면 우아한 기품까지 느껴지게 하는 참 매력있는 티셔츠다.

프랑스 브랜드 세인트 제임스(Saint James)는 1889년 프랑스 노르망디 몽생미셸(Mont Saint Michel) 근처의 세인트 제임스(St. James) 지역에서 시작됐다. 처음에는 거친 바다로 항해를 떠나는 선원들을 위해 만들어진 옷이다. 최초의 세인트 제임스는 전문 선원을 위한 옷이었지만 프랑스 요트계의 아버지이자 항해사로 이름을 떨친 <에릭 타바를리>가 요트 경주대회에 출전할 때마다 착용한 세인트 제임스 스트라이프 스웨터를 사람들도 따라 입기 시작하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요트 경주대회에서 우승을 독차지하는 그의 승리의 원천이 스트라이프 세인트 제임스 덕분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의 데이웨어로 자리 잡아 새로운 스트라이프 라이프 스타일 문화를 보여주는 세인트 제임스는 그 시작부터가 활동적이고 유쾌한 스트라이프 티셔츠의 대명사인 브랜드다.

유난희
명품 전문 쇼호스트
저서 <명품 골라주는 여자> <아름다운 독종이 프로로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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