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방, 1923
푸른 방, 1923

 

[아츠앤컬쳐] “미술관 몇 시에 닫아요?” “미술관은 이미 닫았는 걸요.” 파리의 대표적인 현대미술관인 퐁피두센터가 5년간 리모델링을 위한 휴관에 들어갔다. 휴관 중 기획전은 2025년 9월까지만 진행될 예정이다. 공항 검색대를 방불케 하는 미술관 입구를 통과하는데 직원은 답한다. “목요일 밤 11시까지 야간 개관입니다.”

재봉사, 1914
재봉사, 1914

몽마르뜨의 전설적 뮤즈

19세기와 20세기를 풍미했던 한 여류화가 수잔 발라동(Suzanne Valadon 1865~1938)이다. 그녀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파란만장한 삶, 굴곡진 삶이다. 실상 그녀는 아티스트 이전에 화가들을 위하여 포즈를 취하는 모델, 그리고 누드모델이었다. 르누아르의 그림 속에 춤을 추는 싱그러운 우윳빛깔 미녀가 바로 수잔이다. 몽마르트의 화가들 사이에서 가장 핫한 모델이었던 그녀는 르누아르 외에도 뚤르즈 로트렉, 고흐, 드가, 모딜리아니 등 내로라하는 당대의 화가들과 작업을 했다. 피카소도 그녀의 장례식장에 참석하여 친분을 드러냈다.

흰색 스타킹 신은 여인, 1924
흰색 스타킹 신은 여인, 1924

사생아 마리 클레멘타인 발라동의 발자취

모델과 화가가 되기 전 그녀는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원래 본명은 마리 클레멘타인 발라동이었다. 세탁부였던 미혼모의 사생아로 태어난 그녀는 생계를 위하여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세탁부, 재봉사, 식당 종업원뿐만 아니라, 한 때의 꿈이었던 서커스의 곡예사로도 활동했다. 추락하면서 다리 부상으로 좌절해 있던 시절 몽마르트에서 모델로 일하던 친구의 소개로 열다섯 살의 나이에 미술계에 입문하였던 것이다.

인형, 1921
인형, 1921

드가는 발라동의 스승이었다

모델로 일하던 중 그녀의 화가로서의 잠재력을 알아본 이가 바로 뚤루즈 로트렉이다. 섬세한 안목을 지녔던 그는 그녀에게 드가를 스승으로 소개해 주었다. 드가도 그녀의 재능을 빨리 알아챘다. 드가에게 영향을 받았기에 수잔의 화풍 또한 꾸밈없이 다소 건조하며 현실적이다. 로트렉은 그녀가 화가로서 활동할 수 있도록 예명도 제안했다. 그녀는 더 이상 “마리”가 아닌 “수잔”의 삶을 살게 되었다. 강렬한 색채와 자유로운 붓 터치의 인물화, 정물화가 두드러진다. 맛깔스런 분위기의 작품들에서 마치 트로트 몇 소절이 흘러나올 것 같다.

수잔과 개 두 마리
수잔과 개 두 마리

한편, 그녀는 최초로 남성의 누드를 혁신적으로 그렸다. 이에, 그녀의 업적을 재조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모아지고 있다. 1894년에 여성 최초로 <프랑스 국립예술원회원>이라는 쾌거를 이루었다.

수잔 발라동 전시 포스터
수잔 발라동 전시 포스터

 

글 ㅣ 이화행 Inès LEE

파리 예술경영대 EAC 교수

파리 소르본 미술사대학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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