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프트 시민들의 평범한 일상을 담다

Johannes Vermeer,The Milkmaid, c. 1658
Johannes Vermeer,The Milkmaid, c. 1658

 

[아츠앤컬쳐] 과거 미술이 왕족, 귀족 및 부유층을 위한 특정 계층에 국한된 예술이었다면, 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보통 사람들을 위한 미술의 토대가 마련되었다. 당시 정치, 경제적 성장이 밑거름이 되어 과학과 미술이 큰 발전을 이룩한 시기이다. 네덜란드는 17세기에 접어들면서 ‘황금기(Golden Age)’로 일컫는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이처럼 네덜란드는 1600년대에 스페인으로부터 독립되는 쾌거와 더불어 자유도시국가들의 해상무역을 통해 경제적 번영과 문화적 발전을 경험하였다. 이 과정에서 경제적 부가 왕이나 귀족계급이 아닌 일반 시민계급으로 환원되었으며, 다른 유럽지역에 비하여 신앙과 사상의 자유가 존중됨으로써 상당수의 유럽인들이 네덜란드로 이주하기도 했다.

Johannes Vermeer,The Little Street,1657~58
Johannes Vermeer,The Little Street,1657~58

미술 후원의 중심이었던 교회, 궁정, 귀족 계급의 후원이 감소하면서, 일반 시민들이 작품의 실 구매자의 중심이 되면서 미술 시장도 호황을 누렸다. 당시 네덜란드 미술 시장은 유럽에서 가장 작품이 많이 거래되는 최대시장이었다고 한다. 흥미로운 점은 당시 시민들이 주 고객층이 되면서 이들은 자신들의 일상을 담은 작품을 많이 사들였다고 한다. 즉 네덜란드인들의 삶과 환경을 묘사하는 사실적인 성격의 정물화, 일상을 담은 장르화, 그리고 풍자가 보이는 네덜란드의 자연을 담은 풍경화가 크게 인기를 누렸다.

Pieter de Hooch, Woman Drinking with Soldiers, 1658
Pieter de Hooch, Woman Drinking with Soldiers, 1658

또한 주요 도시마다 지방색을 살린 화풍들이 발전하면서, 당시 네덜란드 회화는 주변의 어느 국가와도 견줄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수준의 독창성을 확보하게 되었다. 그중 청백색이 아름다운 도자기로 잘 알려진 델프트(Delft)는 큰 문화적 영향력이 없었던 고요하고 한적한 매력을 보유한 도시였다. 그런데 바로 이곳에서 어느 지역과도 비교할 수 없는 독창적인 화풍이 발전할 수 있었다. 이 화파의 특징은 인물이 있는 장르화를 중심으로 빛을 민감하고 섬세하게 표현한 점이다.

대표적인 화가로 <진주귀걸이 소녀>로 잘 알려진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1632~1675)를 들 수 있다. 영화와 소설로 잘 알려진 <진주귀걸이 소녀>를 다른 말로 ‘북유럽의 모나리자’라고 일컫는다.

그의 명성은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다. 필자는 매번 동네 슈퍼마켓에 갈 때마다 베르메르와 만나곤 한다. 다름이 아니라 아이스크림과 요플레 등 네슬레 유제품의 포장에 나온 <우유 따르는 여인>이다.

​네슬레 유제품​
​네슬레 유제품​

이 작품은 부지런한 삶과 노동의 숭고함을 담았다. 단순한 일상의 모습을 화사하게 표현한 것 같은 이 그림에는 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일상의 아침 속에 종교의식이 담겨있다고 하는데, 우유는 크리스찬을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는 ‘순전하고 신령한 젖’(베드로전서 2장)이고, 빵은 ‘생명의 빵’(요한복음 6장)으로 해석된다.

Pieter_de_Hooch_Woman hands over money to her servant 1670
Pieter_de_Hooch_Woman hands over money to her servant 1670

베르메르와 더불어 델프트화파로 잘 알려진 화가인 피터 드 흐흐(Pieter de Hooch, 1629~1694)를 소개한다. 흐흐는 본래 로테르담에서 태어났는데, 1652년부터 델프트에 이주하였고, 3년 후인 1655년에 그곳의 예술인과 공인들이 등록하는 생뤼크(Guild of Daint Luke)의 정회원이 되었다. 흐흐는 델프트시민의 가정을 배경으로 건축적인 요소와 일상의 장면들을 신중하게 고려하고 배치하여 그려냈다. 그는 주로 밝고 명확한 색조를 사용하며, 빛을 섬세하고 따뜻하게 묘사해냈다. 전체적으로 아늑하면서 평화로운 분위기를 담아내었다.

Fabritius View of Delft
Fabritius View of Delft

17세기 중엽 델프트화파를 이룬 화가들을 종합해 보면, 1640년대에 카렐 파브리투스(Carel Fabritius)와 니콜라 마에스(Nicolas Maes)에 이어서, 1650년대에 베르메르와 피터 드 흐흐가 대표적이다. 더불어 제라르 후크기스트(Gerard Houckgeest)와 엠마뉴엘 드 위트(Emanuel de Witte), 헨드릭 코르넬리스(Hendrick Cornelisz)가 건축물의 내부전경을 담아낸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글 | 이화행
아츠앤컬쳐 파리특파원, 파리 예술경영대 EAC 교수
inesleear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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