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19세기 말엽의 파리 미술계 경향을 살펴보면 전시회의 폭증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1895년에 미술관을 비롯한 주요기관에서 열린 전시가 총 94건이 등록되었다면, 이로부터 10년 후인 1905년에는 147개의 전시가 기록되었다. 이처럼 전시회가 빠르게 활성화되면서 다양한 테마를 소재로 한 전시가 기획되었다. 그 중 하나의 테마가 바로 ‘어린이’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어린이’를 테마로 한 전시가 다채로운 각도에서 미술사가들에 의해 선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화가들이 남긴 작품 속의 어린이들은 어떻게 그려졌을까?
실상 미술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어린이를 소재로 작업한 초기의 작품은 성화이다. 서양화에서는 신의 아들, 즉 예수 그리스도를 주제로 수많은 작품이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어서, 왕가의 자녀들이 작품의 소재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처럼 수 세기 전에는 절대적이거나 권위적인 어린이를 소재로 하였으나, 훗날에는 자연스럽게 일상 속의 평범한 어린이들을 소재로 한 그림이 대거 등장하게 된다. 그렇다면, 평범한 어린이가 작품의 주인공이 되기까지는 어떠한 사회의 변화가 뒷받침되었을까? 이는 그만큼 사람들의 의식이 변화했음이 증명된다. 그림 속 어린이들을 통해 작품이 제작된 당시의 사회 구조 변화와 시민들의 의식의 전환을 실감해 보자.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프랑스에서는 17세기 말까지 어린이 네 명 중 한 명이 태어난 지 1년 만에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건강문제에 대한 소홀함이나 위생관념 부족, 또는 어린이에 대한 관심과 보호가 부족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당시의 대표적인 어린이 초상화로는 1639년에 그려진 루이 14세의 초상이다. 이처럼 과거에는 왕가의 자녀들이나 귀족가문의 어린이들을 소재로 한 초상화만이 남아 있다. 그러던 중 1640년대에 들어서 프랑스의 형제 화가 르 넹(Les frères Le Nain)이 시골 아이들을 소재로 그린 작품이 전환점이 되었다. 르 넹 형제의 <새장을 든 아이들과 고양이>라는 작품에는 갈색 톤이 지배적이다. 당시의 소박한 농가와 시골 아이들의 일상을 볼 수 있다. 평범한 옷차림과 일상의 소품들을 담은 작품들이 당시 시민층이나 부르주아 고객들에게 인기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어 18세기 들어서 프랑스 사회는 다양한 면에서 큰 변화를 경험하였다. 산업화의 초기였던 당시에는 지성인들과 학계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더불어 오손도손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중요시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아이와 부모를 담은 작품들을 사고자 하는 수요가 증가했다고 한다. 당시의 현격한 사회 변화 중 하나가 어린이 질병을 퇴치하기 위한 의학의 발달, 모유 수유 장려 등을 들 수 있다. 이와 더불어 프랑스 정부는 어머니를 돕고자 보모의 증대를 장려하였다. 이는 모두 어린이의 인권을 높이고 그들에게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하려는 취지에서 출발한 것이다. 또한 이러한 운동에 지성인들이 동참했으며 대표적인 사례로 철학자 장 자크 루소가 1762년에 펴낸 <교육으로부터>를 들 수 있다. 궁극적으로, 아이들은 독자적인 인격체로서 보다 나은 대우를 받게 되었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그림이 많이 나왔다.
샤르뎅의 1738년 작품을 보면 10세 소년이 근사한 복장으로 자신의 서재에 있는 모습이 보인다. 책과 잉크 등의 소품 등을 통해서 소년이 있는 장소가 아이의 서재임을 확인할 수 있다. 소년은 서재에서 책을 읽다가 잠시 지루한 틈을 타서 ‘토통(toton)’이라는 게임을 즐기고 있다. 수줍은 듯 엷은 미소를 띤 소년을 담은 샤르뎅의 이 작품은 18세기 어린이 초상화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어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의 어린이들을 보면 마치 꼬마 군인처럼 무장을 한 모습이 눈에 띈다. 순수하고 맑기만 했던 어린이의 이미지에서 마치 전투에 앞장서는 영웅의 이미지로 현격한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여류화가 에바 공잘레스의 1870년작을 보면 제복을 입은 군사 어린이를 볼 수 있다. 더불어 어린이 군대의 사회적 인지도도 변화하였는데 1874년부터 군사학교가 설립되어 본격적으로 어린이 군사가 양성되었다.
한편, 1830년부터 1870년경에는 소외된 계층의 어린이들을 소재로 그린 그림들이 많이 그려졌다. 대표적인 화가로는 바르비종파의 장밥티스트 카미유 코로, 삽화화가 오노레 도미에, 그리고 만종을 그린 장 프랑수아 밀레를 들 수 있다. 밀레의 그림에는 굴렁쇠를 잡고 있는 어린이와, 아버지가 밭으로 일하러 나간 사이 어머니가 세 아이에게 밥을 주는 모습이 소박한 시골풍경과 함께 담겨 있다.
그리고 1870년부터 1900년까지는 상반되는 어린이들의 모습들을 그림 속에서 볼 수 있다.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통해서 부유층 자녀들의 취미생활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거리에서 생활하는 빈곤층 어린이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후자의 경우 10세도 안 돼 보이는 어린이들이 거리의 상인으로 피곤에 지친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당시에는 파리의 새 도시정책으로 시민 공원이 많이 조성되었던 시기여서 아이들이 정원에서 공놀이를 하거나 뛰어노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
20세기 들어서는 화가들은 영감을 받기 위하여 새로운 것에 눈을 돌리게 된다. 그러던 중 아프리카 예술과 어린이들이 그린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 안에서 단순함을 발견하고 미완성된 듯한 형태에서 특유의 아름다움을 보게 된다. 더불어 어린이들의 그림을 선보이는 전시회도 열리게 되었다. 피카소는 1945년에 이 전시를 보고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내가 이 어린이들 나이였을 때, 나는 마치 라파엘로처럼 그렸다. 그런데 나는 내 평생을 걸려서 이제 아이들처럼 그리는 것을 터득했다.”
글 | 이화행
아츠앤컬쳐 파리특파원, 파리 예술경영대 EAC 교수
소르본느대 미술사 졸업, EAC 예술경영 및 석사 졸업
inesleeart@gmail.com

